신 목사의 다시쓴느 사도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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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용대 목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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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전파의 확장 속에 스데반의 순교는 초대교회의 새로운 전환점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계획하신 뜻을 이루는 도구로 또 한 사람을 세우게 됩니다. 그 사람이 바로 바울입니다. 바울은 가말리엘의 학문과 산헤드린 공회원의 지위만으로도 충분히 성공한 사람이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일에 열정 있는 헌신자였습니다. 바울은 회심이후 주님을 위해 40년간 충성하다가 70세쯤(65년경) 되어서 로마에서 순교하였습니다. 바울이 무엇 때문에 이렇게 변화되고 주님을 위해 자신의 모든 삶을 다 바쳐 헌신했는지에 대한 가장 극적인 장면을 설명해주는 것이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사울은 예수님을 믿고 그를 증거 하다가 순교 당하는 스데반의 죽음을 타당하게 여길 정도로 예수님을 믿는 기독교를 박해했습니다. 예수님의 12사도들은 박해를 피해 지하로 숨어 들어가고 많은 기독교인들은 인근의 다른 나라로 피하여 도망하였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 사울은 다메섹으로 가서 기독교인들을 잡아와도 좋다는 공회의 공문을 받아 가지고 가게 되었습니다(행9:2).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게 되었을 때, 주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행9:4~7). 예수님은 살아계실 뿐만 아니라 바로 그리스도이시며, 자신이 기다리던 메시야였다는 것입니다. 이같이 주님과의 몇 번의 대화를 통해서 바울 자신이 지금까지 믿고 신봉하던 율법과 제사제도의 유대교는 송두리째 무너져 내렸습니다.
사울은 사람들의 손에 이끌려 시내로 들어가 사흘 동안 먹지도 아니하고 마시지도 아니하고 회개하였습니다(행9:9). 그 때에 자기를 용서하시면서 찾아오신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이 그를 이렇게 바꾸어 놓았습니까? 주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예수님의 고난 받음과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부인 할 수도 없고, 그 주님이 살아서 말씀하시니 거절할 수도 없었습니다. 자신이 이제껏 분명하다고 확신에 차서 신봉하고 헌신하였던 자신의 신앙이 오히려 주님을 박해하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주님을 만나지 못하고 교회를 다니고 신앙생활하면 주님을 자신의 지식 안에서 판단하고 이해하려고만 합니다. 그 결과 사울이 그랬던 것처럼 얼마나 많은 잘못을 하며 잘못된 헌신을 하며 사는지 모릅니다. 자기가 가진 종교성으로 인해 많은 사람을 실족하게 하고, 신앙적 아집과 교만 때문에 많은 사람을 힘들게 하고, 깨닫지 못하고 하기에 그가 하는 일이 오히려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기도 합니다. 이런 사람이 예수님을 말씀을 들어 본적이 없어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에 대해 모르기 때문도 아닙니다. 예수님을 진정으로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바울도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기 전까지 그랬습니다. 주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예수님이라는 이름을 알고 그가 행한 사건들에 대해서는 알지만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받아들이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나 다메섹 사건으로 죽은 줄 알고 있었던 예수님은 분명히 부활하셨고, 살아 계시고 또 자기의 이름을 기억해 주시고 불러 주신 분인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사울이 다메섹도상에서 주님을 만난 것처럼 우리도 살아계신 주님을 만나야합니다. 살아계신 주님을 만나지 못하면 아무리 열심을 다해도 생명 있는 신앙인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모태’ 신앙이 아닌 ‘못해’ 신앙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기도하라고 하면 ‘못해!’ 전도하라고 해도 ‘못해!’ 열정적으로 헌신하라고 해도 ‘못해!’ 모태신앙은 어려서부터 신앙의 훈련을 받아서 꾸준히 변하지 않고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러나 부모로부터 받은 신앙이 나의 신앙으로, 개인적인 고백으로 바뀌어져야만 내 속에서 신앙의 불이 붙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모의 가르쳐주신 예수님이 아닌 내가 만난 예수님이 되셔야만 합니다.
사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그의 삶이 바뀌었습니다. 삭개오도 뽕나무 위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삶이 변하고, 목표와 방향이 변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것이 그들의 인생에 터닝 포인트였습니다.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유대교도 버렸고, 헬라철학도 버렸습니다. 이전에 알던 것이나 가진 것을 배설물과 같이 버렸습니다. 편안하게 살려면 얼마든지 잘 살 수 있었지만, 흔들림이 없이 예수부활의 복음을 증거 했습니다. 예수 부활이야말로 진정한 소망이고 보배였습니다. 우리의 가진 보배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주저 없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라고 대답해야 할 것입니다.
진정 예수님을 만나야 할 사람은 교회 안에 있는 우리들 자신입니다(계3:20). 생명이 되시고, 새 능력이 되시고, 새 삶을 주시는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래서 사울이 변하여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주님의 증인의 충성된 삶을 살아간 바울로 불러지는 것처럼 우리 모두도 변화되고 바뀌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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